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2차 빈 공방전 (문단 편집) == 후속전 [[대튀르크 전쟁]] == 이번에는 오스트리아도 1차 때처럼 적이 곱게 퇴각하도록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위기를 벗어난 [[레오폴트 1세]]는 재빨리 폴란드와 함께 오스만군 추격에 돌입하여 후속전인 [[대튀르크 전쟁]]으로 이어졌다. 레오폴트 1세는 헝가리, 크로아티아 등 [[합스부르크 제국]] 전역에서 군대를 소집하였다. 또 유럽 각국에 지원군을 요청하여 [[바이에른 선제후국]]과 [[작센 선제후국]] 등 [[신성 로마 제국]]의 제후국들이 참여하였고, [[루스 차르국]]까지 참전했다. 또 [[압스부르고 왕조|스페인계 합스부르크 가문]]이 다스리는 스페인 왕국도 끼어들었다. 다만 전쟁 좋아하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루이 14세]]의 프랑스는 여기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루이 14세는 오스만과 오스트리아 사이에 전쟁 위기가 고조되던 1681년 9월, [[신성 로마 제국]]령인 슈트라스부르크([[스트라스부르]])를 기습 침공하여 점령했다. 합스부르크 제국이 오스만 제국의 침공 위협에 대비하느라 스트라스부르에 병력을 보내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다. 그리고 오스만 제국이 오스트리아를 침공한 후에 루이 14세는 한동안 관망하고 있다가 1688년 헝가리 전역에서 튀르크와 싸우고 있는 오스트리아의 뒤통수를 갈기며 [[9년 전쟁]]을 일으키는 파렴치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애초에 프랑스는 16세기 초반 [[프랑수아 1세]] 때부터 오스만 제국과 동맹을 맺어 합스부르크 왕가에 맞서왔기에 놀라운 일도 아니다. 오히려 1664년 오스만-오스트리아 전쟁 당시 후자를 도운 것이 이례적이었다. 이후 프랑스-오스만 동맹은 1세기 가량 이어지다 19세기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이집트 원정]]과 [[그리스 독립 전쟁]], [[알제리]] 점령으로 인해 중간에 [[크림 전쟁]]으로 잠시 한 배를 탄 것을 제외하면 완전히 깨진다. 결국 오스만 제국은 퇴각하면서도 점령지를 단단히 다졌던 [[제1차 빈 공방전]]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퇴각하면서 추격해온 유럽 연합군한테 실컷 얻어맞아 점령지를 상당수 잃고 말았다. 1699년 [[카를로비츠 조약]]이 체결되어 [[오스만 헝가리]]와 에르데이 공국은 합스부르크 제국에게 완전히 귀속되었다. 거기에 폴란드는 오스만 제국에게 빼앗겼던 포돌리아, [[베네치아 공화국]]은 [[펠로폰네소스]], [[루스 차르국]]은 [[아조프]]를 접수했다. 한편 신성동맹과 오스만이 실컷 싸우는 틈을 타 신성 로마 제국의 뒤통수를 갈겼던 루이 14세의 프랑스는 의외로 [[9년 전쟁]]에서 고전하며 일시적으로 점령했던 영토 대부분을 도로 토해냈지만, 스트라스부르만은 건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